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경임(景任), 호는 학암(鶴巖). 유순행(柳順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희저(柳希渚)이다. 아버지는 감찰 유용량(柳用良)이고, 어머니는 권련(權戀)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사마양시에 합격한 뒤 음직으로 현감에 임명되었고, 1574년(선조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1년 영암군수로 재직 시 무예에 능하지 못하다 하여, 사간원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1587년 성주목사로 재직할 때에는 수감 중인 죄수가 옥을 부수고 도망한 사건 및 풍속의 문란을 방지하지 못하였다 하여 다시 파직당하였다. 1592년 승정원우부승지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성절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조선의 위급한 상황을 보고하고 구원병을 요청, 명나라 군대를 끌어오는 데 공을 세웠다. 임무를 마치고 귀국 도중 병으로 죽었다.
왜란이 끝나고 공신을 책봉하는 과정에서 유몽정의 이름도 거론되었으나, 조정의 의논이 달라 선무공신에는 책봉되지 못하였다. 광해군 때 아들 유영(柳泳)이 상소하여 녹공(錄功)하여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선대의 논의를 번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추록되지 못하고 증직과 자손의 서용조처만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