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林衍)이 원종을 폐위시킨 사건이 있었을 때 세자로서 원나라에 있던 왕을 보좌한 공이 있어 1282년(충렬 8) 5월 7품인 별장(別將)으로서 5품에 통함을 허락한다는 특전을 받았다.
내료(內僚)로 있으면서 포악하기로 이름났던 경상도안렴사(慶尙道按廉使) 권의(權宜)와 의형제를 맺고 그를 도왔으며, 1295년 4월 대장군으로서 지후(祗候) 김지겸(金之兼)과 같이 세자(뒤에 충선왕이 됨)가 쓸 경비를 전달하러 원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 4월에도 세자의 혼례에 쓸 경비를 전하고 왔다.
1298년(충선 즉위) 7월 밀직부사 판예빈시사(密直副使判禮賓寺事)에 올랐다가 한 달 만에 치사 당하였는데, 같은 해 8월 충렬왕이 복위한 후 인후(印侯) 등이 충선왕을 위하여 한희유(韓希愈) 등에게 누명을 씌운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이 일에 관련되어 파직되었다.
그러나 1300년(충렬 26) 2월 동지밀직사사 판도판서(同知密直司事版圖判書)에 다시 임명되었다. 1308년(충선왕 즉위년) 충렬왕이 죽고 다시 충선왕이 복위하자 평리(評理)였던 그가 원나라에 있을 때 충절을 바치고 위기에서 구하여 준 공이 있다 하여 더욱 중용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