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필(公弼). 유승근(柳承根)의 아들로 어머니는 박간(朴幹)의 딸이다.
1871년(고종 8) 친림경무대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74년 1월 의정부의 추천으로 강원도암행어사가 되어 평해 · 강릉의 허결(虛結)을 탕감할 것을 건의하였다. 다시 1883년 충청좌도암행어사로 임명되어 삼정(三政)의 폐해, 수령과 향리의 부정을 규찰하였다.
다음해 경흥부사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서 중화부에 잠시 유배되기도 하였다. 각지에 큰 흉년이 들고, 화적이 횡행하던 1886년 경상좌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민정을 살폈다.
또, 1889년에는 내무부참의로서 전주의 이서(吏胥)가 관노(官奴)를 학대하여 일어난 소요를 진압, 조사하기 위한 안핵사가 되었다. 1894년 대사간을 마지막으로 관계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