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송도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인 송도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인 1925년 6월 제2회 전조선육상경기대회에서 투창 1위와 투원반 2위를 차지하였고, 연희전문학교 시절인 같은 해 10월 제2회 조선신궁경기대회에서 투원반 1위를 하였다.
또한 축구선수로도 활약하여 1926년 11월 전 조선축구대회에 참석, 숭실전문학교에 2:0으로 우승한 바 있으며, 이듬해에는 동경유학생 축구단의 일원으로 모국을 방문, 친선시합과 축구지도를 하였다. 1929년 6월 제6회 전조선육상경기대회에서 투원반과 투포환 각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에 개최된 제5회 조선신궁경기대회와 이듬해 10월에 개최된 제6회 명치신궁대회 및 제6회 조선신궁경기대회에서 각각 투원반 1위를 하였다. 1931년부터는 철도팀에 소속되어 1931년 10월부터 1935년 10월까지 각종 경기에서 투원반 1위 4회, 투창 1위 2회, 5종경기 1위 1회, 투포환 1위 1회 등을 하였다.
1936년부터는 경성구락부에 소속되어 같은 해 10월과 이듬해 10월에 개최된 제12회 및 제13회 조선신궁경기대회에서 투원반 1위를 하였다. 초창기 우리나라의 육상 및 체육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