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활자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는 미상이나, 고종연간에 간행된 듯하다. 규장각 도서, 고려대학교 도서관,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국역본에 『국역 유연당선생문집』이 있다.
권1에 시 38수, 서(書) 12편, 권2에 소(疏) 3편, 논(論) 3편, 권3에 서(序) 2편, 기(記) 1편, 발(跋) 2편, 잡저 6편, 제문 9편, 상량문 1편, 권4에 부록으로 유사 1편, 묘갈명 1편, 가장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의 「기군문잡사(記軍門雜事)」는 1598년(선조 31) 명나라 장수 형개(邢玠)의 접대낭청(接待郎廳)에 있을 때 겪은 일을 기록한 것인데, 명군(明軍)들이 관왕묘(關王廟)에서 제사 지내고 승리를 다짐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과 군문(軍門)에서 있었던 일을 일기체로 상세히 기술하였다.
또한, 동묘(東廟)의 창건 경위, 명나라와 관왕묘의 관련 사실도 여기에 실려 있다. 「기일본사(記日本事」는 도요토미(豊臣秀吉)에 얽힌 일본의 야사를 들은 대로 적은 것이다.
「양명후세변후설(揚名後世辨後說)」은 남의 나라를 침범하고도 후세에 이름 남기는 것을 장한 일로 착각하고 있는 왜장들의 비뚤어진 생각을 통렬하게 꾸짖은 변설로서, 최치원(崔致遠)의 「격황소문(檄黃巢文)」을 연상하게 하는 문장이다.
서(書) 중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 명나라 장수 유정(劉鋌), 의병장 김면(金沔) 등에게 보낸 서찰과 소의 「척화소(斥和疏)」·「청회복구란소(請恢復救亂疏)」 등은 임진왜란 때 원병으로 온 명나라 장수들의 전쟁수행상황과 왜란사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