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양청(養淸), 호는 서봉(西峯). 사섬시정(司贍寺正) 유자빈(柳自濱)의 아들이다.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로 스승이 죽음을 당한 뒤에는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에 전심하였다. 그는 『대학』을 학문의 골격으로 삼고 6경과 3서를 주요과목으로 하여 제자서에까지 나아갔다.
특히, 『주역』에 정밀하였고, 천문·복서(卜筮)·음률·서화에도 정통하였다. 의술도 깊이 연구하여 어머니의 숙환에 직접 의약을 조제하여 치료하기도 하였다. 청빈한 가운데 우의를 잃지 않았고, 항상 남의 장점만을 말하고 나쁜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유우는 일찍이 연못이 말라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소식을 듣고 큰 재난이 닥칠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 해부터 몇 년 동안 흉년이 계속되어 대기근이 일어나자 그 구제에 진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