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부터 육상경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특히 1,000m·5,000m·1만m 등의 장거리 종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냈다. 1934년 3월 21일 제4회 경영왕복마라톤대회에서는 손기정보다 25초나 먼저 들어와 우승한 바도 있다.
특히, 일본인과 같이 경기를 한 메이지신궁대회에서는 1935년의 8회 대회에서 마라톤 3위를 시작으로 하여 9회 대회(1937) 때는 마라톤 우승, 10회 대회(1939) 때는 1만m에서 우승하여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광복 후인 1945년 12월 27일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자유해방경축종합경기대회(제26회전국체육대회)에서 5,000m와 마라톤에서 모두 우승하여 그 실력을 다시 한번 과시하였다. 조선체육동지회 (조선체육회) 결성때 서무부의 직을 맡아 체육회 창설에도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