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 출신.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단발령의 실시와 1895년의 을미사변으로 민심이 동요하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의병들의 거의가 각처에서 활발해지는 가운데, 1896년 1월 유중교(柳重敎)·이만응(李晩應) 등과 함께 춘천에서 사민(士民) 1,000여명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고 이소응(李昭應)을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이 때 함께 거사하여 적을 토벌하자는 내용의 격문을 8도에 보냈으며, 정부에서 파견한 춘천부관찰사 겸 선유사 조인승(曺寅承)이 가평에 도착하자 가평관아를 급습, 조인승을 처형하였다.
1907년 의병 600여명을 이끌고 가평 벌업산에서 정부군과 접전하다가 패배하여 춘천으로 후퇴한 뒤 유홍석(柳鴻錫)·김경달(金敬達) 등과 함께 가평일대에서 유격전으로 관군과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정부군에 의하여 춘천의병진이 무너지자 산속에 은신하며 후진교육에 힘썼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