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달부(達夫), 호는 호와(壺窩). 아버지는 유계휘(柳啓輝)이며,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이조영(李朝英)의 딸이다.
향시에서 장원하고 45세 때 생원시에 장원하였으나 대과를 포기하고 후진 교육에 힘썼는데, 66세에 안동부의 추천으로 안동부내 도훈장(都訓長)이 되었다. 1749년(영조 25)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만년에 『심경(心經)』과 『근사록』을 연구하였다. 이재(李栽)와 태극에 대한 토론을 벌여 그에게 인정받았으며, 김성탁(金聖鐸)으로부터는 소동파(蘇東坡)에게 비견할만한 재주가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 저서로는 『호와유고(壺窩遺稿)』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