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순명(舜明). 진주목사 윤일선(尹日善)의 손자이고, 진사 윤승구(尹升求)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참판 서긍순(徐兢淳)의 딸이며, 윤덕영(尹悳榮)의 형이다.
1890년(고종 27) 재상의 자제를 왕이 직접 배강(背講)하는 일차과(日次科)로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받았고, 그 해 민씨정권이 세운 기기국(機器局)의 위원으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부수찬·부응교가 되었고, 민씨일파가 기도한 세자의 실질적 대리청정계획에 반대한 이용원(李容元)을 흑산도에 유배보낼 것이 아니라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연명상소를 올렸다. 1894년 갑오경장때 군국기무처의 직제개편에 따라 김홍집(金弘集) 내각에서 공무아문의 참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곧 교체된 뒤 한동안 등용되지 못하다가 수구파정권이 공고해진 1900년에야 부첨사·의정부총무국장이 되었고, 그 뒤 궁내부특진관·경효전제조·사관서제조 등 왕실의 전례에 관련된 직책을 역임하였다. 국권상실을 당한 1910년 8월에는 중추원찬의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