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희경(喜慶). 아버지는 군수(郡守) 윤처관(尹處寬)이다.
충의위(忠義衛)를 거쳐 벼슬길에 올라 1462년(세조 8)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 토벌에 지휘관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워 적개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면서 형조참의에 제수되었으며, 1468년(세조 14) 다시 종2품 가선대부에 오르면서 함안군(咸安君)에 봉군되었다.
1468년(예종 즉위) 남이(南怡)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으나 1470년(성종 1) 방환되고, 다음해에 몰수된 가산과 노비를 돌려받았다. 1472년 강계도호부사에 서용되고, 1476년 공신녹권(功臣錄卷)을 돌려받고 다시 함안군에 봉군되었다.
1490년 영안북도병마절도사로 파견되고, 1491년(성종 22) ‘국경방비에 소흘하여 여진이 조산보(造山堡)에 침입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침입자를 즉시에 격퇴하지 못하였다.’고 논죄되면서 직첩을 몰수당하고 유배되었다. 그 뒤 사면되고, 1500년(연산군 6) 충청도 수군절도사에 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