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시봉(時逢). 윤승례(尹承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보로(尹普老)이다. 아버지는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 윤수미(尹須彌)이며, 어머니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유사눌(柳思訥)의 딸이다. 장인은 현감(縣監) 박인효(朴仁孝)이다.
1453년(단종 1) 부위(副尉)로서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55년(세조 1) 예문관검열로서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고, 1469년(예종 1)에 군자감첨정을 역임하였다. 1479년(성종 10) 사헌부집의에 제수되고, 1487년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면서 호조참의에 발탁되었다.
이후 성종 말까지 황해도관찰사·대사간·예조참의·병조참지와 참의를 역임하였다. 1495년(연산군 1) 다시 호조참의에 제수되고, 다음해 종2품 가선대부에 오르면서 대사헌에 발탁되었으며, 곧 체직되었다가 졸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연산군 즉위 초 대사간으로서 불교식 성종장례를 반대한 성균관유생들을 치죄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그 조치가 불가하다고 했다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되고 가산을 적몰당하였다. 1506년(중종 1)에 신원(伸寃)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