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윤항진(尹恒鎭)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병조판서 이지억(李之億)의 딸이다.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1785년(정조 9) 왕이 춘당대에 나가 유생들을 접견하고 시험을 보였는데, 표(表)에 장원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를 받고 다음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7년 초계문신에 뽑혀 홍문관부교리에 임명되었다. 1791년 과거의 시관으로 참여한 조흘강(照訖講)에서 역적의 자손이 통과하였다 하여 탄핵을 받아 하옥되었으나, 정조의 특별 비호로 풀려났다. 다시 홍문관부교리가 되었다가 진안현감으로 또 가리포첨사로 좌천되었다.
삼사와 성균관제생들의 탄핵이 계속되었으나 채제공(蔡濟恭)의 비호를 받았다. 이가환(李家煥) 등과 가까운 남인으로서 당론에 추종한다하여 노론측의 공격을 받았다. 가리포첨사로 있을 때 수사 이항림(李恒林)과 마찰을 빚어 인천부에 정배되었다.
다음해 정언으로 서용되었으나, 채제공 등 남인들이 탄핵을 받으면서 함께 투옥되었다. 그러나 정조의 배려로 무죄로 석방되었다. 1794년 정언·부교리 등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생활이 순탄치 못하였다. 1829년(순조 29) 진전(眞殿: 선원전의 다른 이름으로 역대왕의 초상화를 보관하는 곳) 작헌례(酌獻禮) 때 집례를 맡은 공으로 당상관에 승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