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칠원(柒原). 자는 대첨(大瞻). 대사간 윤석보(尹碩輔)의 8대손으로, 아버지는 윤은적(尹殷績)이다.
1735년(영조 11) 통덕랑(通德郞)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쳐 1738년(영조 14)에는 사헌부지평이 되고, 장령(掌令)을 역임하였다.
이어 사간원의 사간·헌납(獻納)으로 간원으로 활약하였으며, 세자시강원필선이 되어 세자를 보필하였다. 1746년에는 사간으로서 무과의 문란을 논하여 이에 대한 시정을 장계(狀啓: 계본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는 글)하였고, 무신으로 힘을 과시하던 구선행(具善行)과 의금부의 당상관들을 탄핵하였다.
그 뒤 집의(執義)가 되어 대간으로 활약하였고, 시강원보덕으로 다시 세자를 보도하였으며, 얼마 뒤 외직으로는 처음으로 남양부사로 나갔다. 남양부사로 있을 때 전염병이 만연하여 사람들이 많이 죽었는데, 이 상황을 암행어사 이이장(李彛章)이 상부에 보고함으로써 책임을 물어 파직당하였다. 뒤에 다시 시강원필선으로 복직하여 세자교육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