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평(海平). 할아버지는 충렬왕 때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를 지낸 윤만비(尹萬庇)이며, 아버지는 충혜왕의 총애를 받아 좌정승에까지 오른 윤석(尹碩)이다. 아들은 대호군을 지낸 윤보(尹寶)이다.
1322년(충숙 7) 음으로 태운사 진전직(泰雲寺眞殿直)에 임명된 후 사설직장(司設直長), 낭장, 호군(護軍)을 거쳐 1330년(충혜 즉위) 대호군에 올랐다. 1332년(충숙 복위 1) 3월 충숙왕이 복위하여 충혜왕의 폐신(嬖臣)들을 처벌할 때, 대호군으로 있으면서 이에 연루되어 순군(巡軍)에 갇혔다가 직첩을 추탈당하고 섬에 유배되었다. 1344년(충목 즉위년) 6월 서연(書筵)이 설치되자 상호군으로서 시독관(侍讀官)이 되었다. 같은 해 겨울 군부판서(軍簿判書), 이듬해 4월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역임하였다.
1346년 평양윤을 거쳐 이듬해 2월 서북면존무사(西北面存撫使)로 나아갔다. 1355년(공민 4) 3월 밀직부사로서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공민왕 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에게 승의(承懿)의 호를 내려준 것을 사례하고 돌아왔다. 이후 지밀직사사, 밀직사를 거쳐 1371년(공민 20)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에 이르렀고, 이듬해 평리로 승진하였으며, 그해 겨울에 중대광 해평군(重大匡 海平君)에 봉해졌다. 1382년(우왕 8) 9월 병이 들어 10월 세상을 떠났다.
성품이 관후하여 모가 나지 않았고, 몽고어에 어느 정도 능통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