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5년 서경 분사대부경(分司大府卿)으로 있던 중 묘청(妙淸)의 난에 가담하였다. 묘청과 유참(柳旵) 등이 서인들에게 참살당한 뒤 항복의사를 전하기 위해 김부식(金富軾)에게 갔다가 개경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하옥됨으로써 조광(趙匡) 등이 다시 반역하였다.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 서경에 돌아가 조서를 반포하였으나, 같이 갔던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김부(金阜)와 내시(內侍) 황문상(黃文裳)이 잡혀 죽자 태조의 영정을 받들고 탈출하였다가 역시 피살되었다. 1136년(인종 14) 5월 서경 평정을 기념해 사면과 포상을 할 때, 윤첨은 서경 성안에 있으면서 반란군에 참여하지 않아 살해되었으므로 그 아들에게 관작(관작) 1급이 하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