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두기(斗基), 자는 의보(毅甫), 호는 도계(陶溪). 아버지는 윤광후(尹光後)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로 동중추(同中樞) 박사수(朴師修)의 딸이다.
1792년(정조 16) 생원이 되고, 학행으로 천거되어 의선공감가감역(擬繕工監假監役)을 지내다가 1800년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되고, 이어 익찬(翊贊)이 되었다. 1814년(순조 14) 창녕현감을 거쳐 1818년 고성군수(高城郡守)에 이르렀다.
평소 학문에 전심하여 주자서(朱子書)를 비롯, 성리학과 역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예학(禮學)에도 밝아 사람들이 그를 ‘관서부자(關西夫子)’라 하였다. 또한, 시문에도 뛰어나 고성군수로 있을 때 지은 「풍악기행시(楓嶽紀行詩)」는 유려한 문체를 구사한 작품이다. 저서로는 『도계유고(陶溪遺稿)』·『상례홀기(喪禮笏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