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성제(聖際). 판관 윤경승(尹慶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험부장령(司憲府掌令) 윤겸(尹㻩)이다. 아버지는 회덕현감 윤징하(尹徵夏)이며, 어머니는 동래정씨로 참판 정지호(鄭之虎)의 딸이다. 부인은 이상익(李商翼)의 딸이다.
1683년(숙종 9)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이어 1691년 통덕랑(通德郞)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아버지는 원래 송시열(宋時烈)의 제자였으나 뒤에 소론에 동참하여 비난을 받았다. 소론의 재사(才士)로서 1707년(숙종 33) 이후 다년간 사헌부장령으로 재직하며 당론을 주장하였다.
1709년에는 노론 중신(重臣) 이관명(李觀命)·이만성(李晩成) 등을 탄핵하였고, 소론의 영수 최석정(崔錫鼎)이 『예기류편(禮記類編)』을 저술하여 물의가 야기되자 윤회가 변호하다가 파직되었다. 뒤에 김천군수, 사간원 헌납(獻納)·사간을 지냈다. 1721년 신임옥사가 일어나자 노론 일파를 논죄하고 숙청하는 데 앞장섰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에 임명되어, 처형된 노론 4대신(김창집, 이건명, 이이명, 조태채)과 민진원(閔鎭遠) 등을 비판하다가 노론측의 공격을 받고 삭탈관직되었다가 곧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