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탄한 산기슭 위쪽에 위치해 있으며 원래 봉토는 남아 있지 않았다. 1956년 7월과 1957년 3월사리원력사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었다.
지표의 70㎝ 아래에서부터 유물이 출토된 이 유구는 조사 결과 널무덤으로 밝혀졌다. 구덩이[土壙]의 크기는 동서 길이 260㎝, 남북 길이 250㎝, 깊이 110㎝에 이르는 정방형에 가까운 모습을 갖추고 있다.
구덩벽은 경사를 이루어 밑으로 내려가면서 좁아졌고 중간에서 단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무덧널시설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으나 주위의 부식된 상태로 보아 원래는 그러한 시설을 갖추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구덩이 안에서는 지표 하 70㎝에서 철제유물이 나타나고 100∼105㎝ 아래에서 청동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종류는 청동기로 세형동검(細形銅劍) 1점, 칼자루끝장식[劍把頭飾] 1점, 투겁창[銅鉾] 1점, 쇠뇌부속금구[弩機附屬金具] 1점, 수레부속금구[車輿具附屬金具] 2점, 삿갓모양동기[笠頭筒形銅器] 3점, 乙자모양동기 6점, 관모양동기[管形銅器] 6점, 청동고리[銅環] 3점, 청동띠고리[帶鉤] 3점, 둥근칼자루끝장식[圓形劍柄頭] 2점이 있다. 철기류로는 철검(鐵劍) 1점, 투겁창[鐵鉾] 2점, 판상도끼[板狀鐵斧] 1점, 말재갈[銜] 1점, 쇠못[鐵釘] 1점과 유리구슬 7점, 화분형토기(花盆形土器)가 있다.
이러한 종류의 구덩무덤은 은율 운성리와 강서 태성리 등에서 조사된 일련의 구덩무덤과도 비슷한 성격을 보인다. 출토유물을 통해볼 때, 황주 흑교리와도 유사한 점이 많아 여기에서 출토된 천상횡문오수전(穿上橫文五銖錢)과 함께 그 연대의 일단을 추정해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