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고구려의 천정군(泉井郡, 또는 於乙買)이었는데, 문무왕 때신라에 예속되었다. 757년(경덕왕 16)정천군(井泉郡)으로 바꾸어 삭주(朔州)에 예속시켰고 송산(松山)ㆍ산산(蒜山)ㆍ유거(幽居)의 3개 현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용주(湧州)로 고치고, 995년(성종 14) 방어사(防禦使)를 두어 동계(東界)에 속하였으며 뒤에 의주로 고쳤다. 1413년(태종 13)의천(宜川)으로 바꾸고, 1437년(세종 19)덕원군(德源郡)으로 하였다가 뒤에 도호부(都護府)로 높였다.
진흥왕순수비가 이원(利原)의 마운령(磨雲嶺)에 있는 점으로 보아, 신라의 영토가 함경남도 동해안 북쪽까지 미쳤지만, 발해와의 실질적인 경계는 덕원 부근이었을 것으로 본다. 675년(문무왕 15) 철관성(鐵關城)을 쌓았는데 주위가 2,400척이나 되었다. 경덕왕 때 탄항관문(炭項關門)을 쌓았는데 이 지역이 북계(北界)의 북방경계가 되었다.
해안지방에는 낭문성(朗門城)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원산포(元山浦)와 교제창(交濟倉)ㆍ원창(元倉)이 있어서 동북해안의 물자를 모았으며, 어항으로서의 구실도 하였다. 지금의 덕원면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