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함평 출신. 상업에 종사하였다. 1909년 7월에 전라남도 함평 대야명에서 동지 박치일(朴致一)·정인술(鄭寅述)·박장봉(朴章奉)·서성학(徐成學)·양창국(梁昌國) 등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켜 김태원(金泰元, 일명 準)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4월 의병장 김태원이 순국한 뒤 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1909년 함평·영광 각 지역에서 접전한 뒤 나주의 헌병분파소 및 구례의 파견대 소속 밀정인 이판안(李判安)·김정태(金正泰)·최치도(崔致道)·박복남(朴福男) 등을 살해하였으나 이 일이 발각되어 붙잡혔다.
1909년 12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사형이 언도되어 항소하였으나 이듬해인 1910년 3월 대구공소원(大邱控訴院)에서 기각되어 원심이 확정되었고, 같은해 6월 순국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