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난파(蘭坡). 아버지는 문간공(文簡公) 이정(李挺)이다.
우왕 초에 밀직부사를 지내고, 1382년(우왕 8) 경상도도순문사로 왜구를 소탕하였다.
1388년에 지문하(知門下)로 상만호가 되어 임견미사건(林堅味事件)을 맡았고, 1389년(공양왕 1) 문하평리(門下評理)로 재직시에는 김저(金佇)의 옥사에 연루, 유배되었다가 1391년 경상도관찰사로 다시 등용되었다.
이듬해 조선이 건국되자 삼사좌사(三司左使)로 진위사(陳慰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뒤에 청천백(淸川伯: 淸城伯이라고도 함.)에 봉하여졌다. 1394년(태조 3) 판개성부사로 있을 때 전날 사신으로 밀무역을 한 사실과 타인의 가기(家基)를 탈취한 일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이듬해 파직되었다.
1399년(정종 1) 조박(趙璞) 살해 음모에 연루되어 청주에 유배되고, 이듬해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치사하였다. 시호는 공절(恭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