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집(仲集), 호는 석루(石樓). 이치(李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지번(李之蕃)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이며, 어머니는 조언수(趙彦秀)의 딸이다.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596년 예조좌랑·병조좌랑을 지내고, 1608년 정인홍(鄭仁弘) 등과 함께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옹립을 꾀하는 소북 유영경(柳永慶)을 탄핵하다가 강계에 귀양갔다.
이 해 광해군이 즉위하자 풀려나와 충홍도(忠洪道)·전라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1618년(광해군 10) 한평군(韓平君)을 습봉(襲封)하고 좌참찬에 올랐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서인들에게 아첨하여 생명을 보전하고,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가서 인조의 책봉을 요청하였다.
이어 한평부원군(韓平府院君)에 진봉되고, 1637년에 장유(張維)·이경석(李景奭) 등과 함께 삼전도(三田渡)의 비문 작성의 명을 받았으나 병을 빙자하고 거절하였으며, 1640년 형조판서를 지냈다. 문필이 뛰어나 이름이 높았으며 저서로는 『석루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