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명원(明遠). 아버지는 형조참판 이계남(李季男)이다.
1491년(성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494년(연산군 즉위년) 연산군이 죽은 성종을 위하여 불재(佛齋)를 올리자, 성균관의 유생으로서 이목(李穆) 등과 함께 불사로 명복을 비는 것은 선왕의 뜻이 아니라는 상소를 하여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탕당하였다.
얼마 뒤 죄가 풀리고, 149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에 이르렀으나 23세로 요절하였다. 시문과 글씨가 뛰어났고, 말타기·활쏘기를 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