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범(汝範). 할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 이명웅(李命雄)이고, 아버지는 별검(別檢) 이진규(李震奎)이다. 어머니는 좌승지 심광수(沈光洙)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났으며, 허목(許穆)으로부터 수학하였다.
허목이 송시열(宋時烈)을 탄핵하여 왕의 노여움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나자 스승을 돕기도 하였으며, 허목이 죽자 상복을 입기도 하였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 때에 남인이 실각하자 이구령도 서울을 떠나 태백산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그 뒤 1689년 음보로 도원찰방(桃源察訪)으로 있다가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169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고, 이어 저작, 박사를 거쳐,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1693년 충청도사(忠淸都事)가 되고, 이어 1707년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었다. 1709년 봉상시령을 거쳐, 외직으로 나아가 능주목사(綾州牧使)가 되어 민폐를 없애고 학교를 세우는 등 여러 가지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뒤에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에 머물면서 왕의 소명도 모두 거절하고, 다시는 서울의 도성문에 들어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