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신. 1941년 무렵에 일본의 도쿄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김환기(金煥基)·유영국(劉永國)과 함께 한국 근대 미술사의 초기 추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일찍부터 추상주의 작품을 지향하였던 그의 진취적인 조형 행위는 1945년 이전에는 주로 도쿄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광복 후에는 서울에서 새로운 추상 미술 개척으로 이어졌다.
1947년에 조선미술문화협회 창립 회원이 되었고, 같은 해김환기·유영국·장욱진(張旭鎭)과 새로운 조형 정신을 내세운 신사실파(新寫實派) 그룹을 만들고 작품전을 가졌다. 1948년의 제2회 신사실파전에 출품된 그의 작품은 모두 「콤포지션(Composition)」이라는 명제의 순수 추상화였다. 그 뒤에도 그의 추상화 작업은 계속되었다.
1957년에 유영국·한묵(韓默)·박고석(朴古石)·황염수(黃廉秀)와 모던아트협회를 창립하고 그 첫 전람회에 출품한 그의 추상 작품들은 모두 「작품」으로 명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2회전부터의 명제는 고독한 정신적 상황과 가톨릭으로의 귀의를 말해 주는 「형관(荊冠)」, 「그리스도 왕 제전(祭典)에」, 「성모성월(聖母聖月)」, 「기도(祈禱)」 등이었다. 그리고 한 번뿐이었던 1963년수도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때에는 전부 「생태(生態)」라는 단일 명제였다.
1960년 이후의 작품들은 완전히 그의 방법으로 양식화된 평면적 형상, 혹은 엄격한 질서가 부여된 원(圓)과 십자가의 변환 같은 상징적인 형태를 부각시켰다. 유채(油彩)의 의도적 질감이 이루는 현대적 조형성 강조로 특질적 내면성을 창출하고 있었다. 홍익대학교에 출강하였고, 조선일보사 주최 현대작가초대전에도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