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함평 출신. 1907년 군대해산이 강행되자 을미의병운동 때 이름을 떨친 기삼연(奇參衍)·김태원(金泰元, 일명 準)·김용구(金容球) 등이 동지를 규합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휘하에 들어갔다.
같은 해 8월 석수승암(石水僧庵)에서 전투훈련을 마친 뒤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호남창의맹소(湖南倡義盟所)를 구성하였는데, 기삼연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후군장(後軍將)에 피임되었다.
나주·광주·담양·장성 등지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였고, 이어서 9월 23일 고부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헌병사령부를 공격하기 위하여 고창으로 진격하던 중 문수암(文殊庵)에 이르렀을 때 적의 급습을 받고 교전하여 적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고 고창성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곧이어 성이 다시 적의 수중으로 들어갔으며, 이 전투에서 부하를 진두지휘하던 중 중상을 입고 산중에 은신하였는데, 어느 여인의 밀고로 일본헌병에게 붙잡혀, 11월 7일 순국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