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숭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단송도감낭청, 직제학, 통정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484년(성종 15)
본관
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주요 관직
단송도감(斷訟都監) 낭청|직제학|통정대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단송도감낭청, 직제학, 통정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이작(李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의흡(李宜洽)이다. 아버지는 장예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이원효(李元孝)이고, 어머니는 성우(成栩)의 딸이다. 부인은 군수 김약흠(金若欽)과 홍약이(洪若彛)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62년(세조 13) 생원시에 합격하고, 1472년(성종 3) 오위의 사맹(司猛)으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예문관봉교(奉敎)에 제수되었다. 1474년 예문관수찬 겸 경연검토관(藝文館修撰兼經筵檢討官)에 승직하고, 다음해 통신부사(通信副使)가 되어 일본을 다녀왔다.

1477년 부교리(副敎理)로서 문과중시에 3등으로 급제하고, 이어 장령(掌令) 재직 중 도승지 현석규(玄碩圭)가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초자(超資)되자 그 불가함을 극간하고 성종의 노여움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곧 서용되었다.

1481년 부응교(副應敎)로서 단송도감(斷訟都監) 낭청에 선임되고, 그 일에 기여한 노고로 정3품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르면서 집의(執義)에 발탁되고, 1483년에는 직제학(直提學)에 승직되었다.

1484년에는 다시 정3품 통정대부에 오르면서 부제학에 제수되고, 동직 재직 중 병으로 졸하였다. 묘는 경기도 파주시 내율동(內栗洞)에 있다.

참고문헌

『성종실록(成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전의이씨족보(全義李氏族譜)』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