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아버지는 이사위(李士渭)이다.
1385년(우왕 11) 문과 동진사(同進士: 丙科에 해당) 제12위로 급제하였다. 1409년(태종 9) 성주목사로 재직하면서 백성을 동원하여 관둔전(官屯田)을 경작하도록 하였다가, 경차관(敬差官)에게 적발되어 중도부처(中途付處: 유배도중 죄의 가벼움으로 도중에서 자신이 운하는 곳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형벌제도)되었다. 1419년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하던 중 병으로 사임한 뒤 그 해 12월에 죽었다. 조정에서 종이 70권을 치부(致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