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오하(梧下). 경기도 안성 출생. 서울 양정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서양화과에 유학하여 1925년에 졸업하였다.
이병규는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는 외면하면서 서화협회전람회, 도쿄미술학교 동문들의 동미전(東美展, 1930∼1932), 그리고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을 거부하던 민족적 의식의 일부 젊은 양화가들이 1934년에 조직한 목일회(牧日會)의 동인작품전 등을 통하여서만 작품을 발표하였다. 당시의 작품들이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정물」, 「백일홍」 등의 출품 기록이 밝혀져 있다.
목일회전이 일제의 탄압을 받아 중단되었다가 1937년에 목시회(牧時會)로 명칭을 바꾸어 재기동인전을 가질 때에도 참가하였다. 당시의 작품 기법을 명확히 확인할 수는 없으나, 후년기의 작풍과 연관되는 치밀한 사실주의의 범주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광복 후에는 1949년의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때부터 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 등으로 줄곧 참여하면서 철저한 사실적 기법의 작품활동을 지속하였다. 소재는 주로 온실 속의 꽃과 설악산·가야산 등지에서 그린 자연미, 역사적인 사찰 주변의 풍정에 집중되었다.
1958년에 조직된 사실주의 계열의 서양화가단체 목우회(木友會)와 1968년의 한국사실작가회 창립에도 참가하여 그 연례회원작품전에 해마다 출품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온실 속의 여인」(1963), 「온실 일우(一隅)」(1971) 등이 있다.
1957년 교육공로상을 수상하였다. 1962년에 대한민국 문화포장, 1964년에 서울시문화상, 1967년에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하였고, 1970년에는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1983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 목관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