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일원(一源). 호는 사천(槎川), 또는 백악하(白嶽下).
부모를 비롯한 그의 출신배경은 알 수 없다. 백산(白山)이라는 곳에 살았다. 김창흡(金昌翕)의 문인이며, 벼슬은 음보(蔭補)로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시에 뛰어나 영조시대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졌다. 문인 김익겸(金益謙)이 그의 시초(詩抄) 한 권을 가지고 중국에 갔을 때 강남(江南)의 문사들이 “명나라 이후의 시는 이 시에 비교가 안 된다.”라고 그의 시를 극찬하였다고 한다.
일생동안 무려 13,000여 수에 달하는 많은 시를 썼다고 하나, 현재 시집에 전하는 것은 500여 수뿐이다. 그의 시는 대부분 산수·영물시로, 대개 서정이 두드러지고 깊은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매화를 소재로 55수나 되는 시를 지었는데, 이는 대개 은일적인 기분을 표현한 것으로, 생(生)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다. 중국의 자연시인 도연명(陶淵明)의 의경을 흠모하였던 것 같다.
80세가 넘도록 시작생활을 계속하였다. 저서로는 『사천시초(槎川詩抄)』 2권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