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태수(太綏). 가계와 행적 등이 알려져 있지 않다. 윤두서(尹斗緖)는 『화단(畵斷)』에서 “그의 그림이 해박하고 정밀한 점은 안견(安堅)에 버금가나 활달한 맛은 오히려 그보다 낫다.”고 하였다. 남태응(南泰膺)의 『청죽화사(聽竹畵史)』에는 “강희안(姜希顔) 이후 신세림(申世霖)과 나란히 이름을 날렸으나 전하는 유작이 드물다.”고 하였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역시 희소한 편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예장소요도(曳杖逍遙圖)」와 개인소장의 「기려독행도(騎驢獨行圖)」, 「산수도」가 알려져 있다.
이밖에 「모춘도(暮春圖)」와 「묘작도(猫鵲圖)」 등이 그의 작품으로 전칭되고 있다. 「예장소요도」는 남송의 마하파(馬夏派) 양식에 북송대의 화풍을 가미한 절충적 경향을 띠고 있으며, 「산수도」는 이러한 경향과 함께 절파풍(浙派風)과의 관련성도 보이고 있다.
활달하고 생략적인 필치를 특징으로 하는 「기려독행도」는 소재라든가 인물중심으로 구성된 구도 등에서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와 함윤덕(咸允德)의 「기려도(騎驢圖)」에서 보이는 특색을 계승하고 있어, 조선 초기에 유입되어 16세기 화단으로 이어졌던 절파화풍의 발전에 관련된 그의 회화사적 위치를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