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초상 ( )

이색 초상
이색 초상
회화
유물
고려 말의 학자 이색을 그린 조선시대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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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말의 학자 이색을 그린 조선시대의 초상화.
구성 및 형식

199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목은영당(牧隱影堂)본 2점(대본 : 세로 150㎝, 가로 81.6㎝. 소본 : 세로 25.8㎝, 가로 25㎝), 누산영당(樓山影堂)본 1점(세로 143㎝, 가로 82.5㎝), 대전영당(大田影堂)본 1점(세로 150㎝, 가로 85㎝), 영모영당(永慕影堂)본 1점. 이색의 영정은 현재 전국에 걸쳐 여러 폭이 산재하여 있다.

내용

허목(許穆)의 『미수기언(眉嫂記言)』, 「목은화상기(牧隱畵像記)」에 의하면 원래 이색의 초상화는 두 종류의 본이 있었다. 하나는 관복 차림새[正裝官服本]로서 표관(豹冠), 서대(犀帶), 비포(緋袍)에 수염과 머리털이 반백인 초상화였다. 또 하나는 야복(野服)본으로서 고려가 망한 뒤 슬픔에 젖어 시를 읊조리던 그림이었다 한다. 그런데 이 야복본은 이미 허목의 생존 당시에도 전하지 않았다. 현재 전해 오는 이색의 영정은 모두 관복본으로서 동일한 초상화 형식을 보여 준다.

예산 누산영당본의 대본은 목은영정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임진왜란 후 이모한 작품으로서 당시 사대부 화가였던 허의(許懿)와 화원이었던 김명국(金明國)이 그렸다고 전해 온다. 이 초상화는 게 발처럼 옆으로 뻗은 사모를 쓰고 오른쪽을 바라보는 우안구분면(右顔九分面)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체적인 형식은 고려 말 조선 초의 공신도상을 보여 준다.

이 위에는 권근(權近)의 찬문과 아울러 그 아래에 ‘숭정 병자후19년 을미8월 상순 후손 이조좌랑 정기가 공경하여 쓰다[崇禎丙子後十九年乙未八月上澣後孫吏曹佐郞廷夔敬書]’라는 글이 쓰여 있다. 이 초상화의 제작 연대가 1655년(효종 6)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비록 남의 그림을 본떠 그린 이모본(移模本)이기는 하지만, 복제(服制)는 물론 안면 처리 역시 원본에 상당히 충실하였다. 안면은 살색 바탕에 이마, 코, 뺨 그리고 오악(五岳 : 안모의 골상 중 높은 부위) 부위에는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옅은 홍기를 집어넣었다. 안면 주름은 갈색 선으로 나타냈다. 눈은 단순히 묵선과 담묵(淡墨 : 진하지 않은 먹물)으로 처리하여 고식(古式)을 보인다.

우리나라 초상화법 가운데 가장 중시되는 수염 역시 밑에 살색을 칠하고 백색과 흑색의 두 색선을 교차로 표현하였다. 이금(泥金 : 아교에 갠 금박 가루)기가 살짝 엿보인다. 밑에 깐 돗자리는 원보에는 없었던 것으로 이모 당시에 삽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은영당 소장 이색상은 화면의 우측 상단에 역시 권근의 화상찬(畵像贊)이 적혀 있다. 1526년(중종 21) 김희수(金希壽)가 제기를 썼던 본을 다시 1711년(숙종 37) 개모(改模)하여 경기도 장단의 임강서원(臨江書院)에 봉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초상화는 고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약간씩 내비치는 선염(渲染 : 한쪽을 진하게 칠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옅게 칠함)기가 이 초상화의 이모 연대를 말해 준다. 필세(筆勢)에 골격(骨格)이 감지되며 안면 처리 역시 섬세하다.

종중에서는 이 본이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약탈되었다가 후에 목은선생의 후손인 여우길(呂祐吉)이 찾아온 원본이라고 주장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수기언』의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 일본에서 가져온 본이 오래되어 이미 비단 바탕이 떨어져 못 쓰게 되었다 하므로 그것이 이 본일 수는 없다.

의의와 평가

이색 영정 5점은 모두 이모본이기는 하지만 고려 말 조선 초에 제작된 초상화가 드문 현 실정에 있어서 당시의 초상화법과 양식을 여실히 반영해 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초상화: 형과 영의 예술』(조선미, 돌베개, 2009)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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