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옥(士玉). 경상북도 청송 출신. 1896년 을미의병이 각처에서 전개되자 의병부대에 입진하였으나 의병부대 해산조치에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그 뒤 1906년 을사의병의 일환으로 영천을 중심으로 산남의진(山南義陣)이 구성되자 의병장 정용기(鄭鏞基)의 휘하에서 초장(哨長)과 좌령장(左領將)으로 활약하였다. 1907년 남석문(南錫文)·정순기(鄭純基) 등과 청송·영덕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던 중 남석문이 붙잡혀 처형당하자 중도에서 귀대하였다.
이때 의병장 정용기가 전사하고 정환직(鄭煥直)이 의병장으로 추대되자 중군(中軍)에 임명되었다. 얼마 후 정환직이 청하에서 패전하여 처형당하자 의병장으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하였다.
한편, 당시 산남의진은 의병장이 공석인 채 이미 구심력을 잃고 소규모의 유격부대로 재편되어갔다. 이에 소수의 부하만을 인솔하고 장기와 청하 등지를 진격,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며 이어서 울산으로 진군하던 중 일본군의 복병에게 크게 패하였다.
그 뒤 휘하의 의병을 해산하고 귀향하여 삼유산(三踰山) 아래 도평촌(道坪村)에 은거하던 중 1909년 7월에 붙잡혔다. 3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던 중 탈옥하였으나 다시 붙잡혀 처형당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