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시대 호종공신 2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이칭
군실(君實)
매창(梅窓), 호기(互棄)
시호
충정(忠貞)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0년(선조 3)
사망 연도
1620년(광해군 12)
본관
전주(全州)
주요 관직
선전관|도정
관련 사건
임진왜란
정의
조선시대 호종공신 2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실(君實), 호는 매창(梅窓)·호기(互棄). 성종의 4대손이며, 익양군(益陽君) 이회(李懷)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황양정(荒壤正) 이수린(李壽麟)이고, 아버지는 도정(都正) 이간(李侃)이며, 어머니는 광주김씨로 김인사(金獜士)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세 때 금산수(錦山守)에 예수(例授)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전관이 되어 세자 광해군을 따라 피란하여 신주(神主)를 봉안하였다. 선조가 죽자 혼전(魂殿)을 지켜 그 공으로 도정으로 승진하였고, 또 광해군의 분조에 호종한 공으로 호종공신 2등에 올랐다.

광해군 때 영창대군(永昌大君)이 희생되고 이어 폐모론이 거세게 일자 분함을 참지 못하고, 종반(宗班) 18인을 거느리고 소두(疏頭)로 상소하여 이이첨(李爾瞻) 등의 간배(奸輩)들을 물리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서 남해에 안치(安置)되고 모든 관직을 삭탈당하였는데 그곳에서 죽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새 왕이 등위하자 특별히 예관(禮官)을 보내어 제사를 드리게 하고, 금산군으로 추봉하였다. 시문에 재주가 있고, 글씨를 잘 썼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송자대전(宋子大全)』
『고산유고(孤山遺稿)』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