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일명 의신(宜愼), 직신(直愼). 호는 습재(習齋). 강원도 춘천 출신. 유학에 조예가 깊었고 인품이 고매하여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다.
1895년의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 시해와 단발령의 강제로 배일감정이 폭발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투쟁이 일어나자, 1896년 1월 20일(음력 을미년 12월 16일)에 유중락(柳重洛) · 이만응(李晩應) 등의 지방유생과 1,000여 명의 농민들에 의하여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이소응은 척사위정의 대의를 내세워 일본을 오랑캐 왜노(倭奴)로 규정하고, 엄한 군율 밑에서 부대를 통솔하였다. 먼저 정부에서 개화관료인 조인승(曺寅承)을 춘천관찰사 겸 선유사로 임명하자 단발하고 부임한 조인승를 참형에 처하여 그 기세를 올렸다.
2월 8일에는 이겸제(李謙濟)가 인솔한 친위대 3개 중대의 공격으로 타격을 입고 흩어졌으나 다시 모여 부대가 정비되었다. 그 뒤 포천 · 영평 · 양광 등지에서 맹위를 떨쳤다. 또 일부 병력은 그 뒤 동해안으로 진출하여 강릉에 이르렀고 경기도 여주 · 이천에도 진출하였다.
그러나 신우균(申羽均) · 김구현(金龜鉉)이 지휘하는 관군의 공세가 치열해지고 전략 전술 및 무기의 열세로 점차 전력이 약화되었다.
한편, 병력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문제도 곤란해져 지평군수 맹영재(孟英在)와 협상하였으나 실패하자 2월 17일 부득이 제천의 유인석(柳麟錫) 부대로 이적하였고 부대는 종형 이진응(李晉應)이 지휘하였다. 이진응 다음에는 이진응의 아우 이경응(李景應)이 대장에 추대되어 지휘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