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중평(仲平). 이인손(李仁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이극배(李克培)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세충(李世忠)이며, 어머니는 최표(崔豹)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6년(성종 17) 진사에 오르고, 1488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사축서사축(司畜署司畜)·전적·정언이 되었다. 1490년(성종 19) 외방사사전(外方寺社田)을 감축하여 향교에 급여하도록 하고, 1494년 형조정랑·교리·문학·봉상시첨정을 거쳤다.
1497년(연산군 3) 장령·응교 그리고 사성을 역임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를 만나 난언(亂言: 弔義帝文을 말함.)을 알고도 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함경도 종성(鐘城)에 유배되고, 이어 전라도 광양에 이배되었다가 1501년 풀려 나왔다.
1504년 갑자사화를 만나 폐비 윤씨의 묘를 이장할 당시 도감의 설치를 반대하였다는 죄로 참살되었다. 1508년(중종 3) 도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