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쌍송(雙松) · 오향정(五香亭) · 금헌(琴軒). 초명은 융(瀜)이다. 세종의 손자이고, 생부는 계양군 이증(桂陽君 李璔), 생모는 좌의정 한확(韓確)의 딸이다. 후에 담양군 이거(潭陽君 李璖)의 계자가 되었다.
세조의 극진한 총애를 받아 1455년(세조 1) 3세에 특별히 강양도정(江陽都正)이 되었고, 이후 다른 종친과는 달리 궁내에 거처하면서 세조가 정하여준 사부(師傅)로부터 수학하였다. 세조대를 통하여 내종친(內宗親)의 한 사람으로서 궁내에서 세조를 시종 및 세조의 크고 작은 행행(行幸)에 수행하였다.
1467년 강양군(江陽君)에 책봉되었고, 1484년(성종 15) 전년의 정희왕후(貞熹王后) 국상에 수반된 세조능 시릉(侍陵)의 노고로 소덕대부(昭德大夫)에 품계가 오름과 아울러 왕명에 의하여 제종친의 비위를 규찰하였다.
이후 독서 · 산수 · 탄금을 즐기면서 자적하다가 죽었다. 단아하고 근실한 성품, 정순한 학문 및 능숙한 음률로 명망이 있었다. 묘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산(坡平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