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이곡(李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색(李穡)이고, 아버지는 밀직제학 이종학(李鍾學)이다.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하고, 1408년(태종 8)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418에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가 되었으나, 태조의 기신제(忌晨祭)에 제물을 잘 갖추지 못하였다 하여 일시 파직되었다가 그뒤 직강·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418년에 병조좌랑에 이르렀는데, 이 때 병조판서 박습(朴習), 참판 강상인(姜尙仁) 등이 총제(摠制) 심정(沈泟)과 더불어 금위(禁衛)의 군사를 분속시키면서 왕의 허가만 얻고, 상왕인 태종의 허가를 받지 않은 일이 있었다.
군국(軍國)의 권한을 장악하고 있던 태종은 이것이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하고 심히 노하여, 병조에 소속된 관원을 모두 처형하였는데 이 때 이숙복도 함께 피주(被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