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합천(陜川)이다. 1341년(충목 2) 6월 밀직사사(密直司使)로서 인사행정을 관장하였지만, 뇌물사건에 관련되어 영해(寧海)의 수령으로 좌천되었다. 1348년 12월 충목왕이 죽자 우대언 윤택(尹澤) 등과 함께 공민왕을 추대하는 글을 원나라 중서성에 올려, 충정왕의 미움을 받고 다음해 7월 선주구당(宣州句當)으로 좌천되었다.
1354년(공민 3) 7월 지밀직사사에, 11월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승진했지만, 사소한 사건으로 한때 태안에 유배되었다가 뒤에 신돈에게 총애를 받고 있던 동생 이운목(李云牧)으로 인해 다시 정당문학이 되었다. 1360년 2월 강양백(江陽伯)으로 수안곡주등처축성감독사(遂安谷州等處築城監督使)가 되었다. 1367년(공민 16) 3월, 일찍이 처제와 간통하여 아들을 낳은 사실에 대한 헌사(憲司)의 탄핵으로 중모(中牟: 경상북도 상주)에 유배되고 적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