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덕훈(德薰), 호는 취사(炊沙) 또는 감곡(鑑谷). 아버지는 참봉 이효신(李孝信)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효령대군(孝寧大君)의 4대손인 이귀윤(李貴胤)의 딸이다. 한우(韓佑)의 문인이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 160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 해 벽사도찰방(碧沙道察訪)으로 나갔으나 1년 만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610년(광해군 2) 성균관전적으로 등용되었으나 정인홍(鄭仁弘)과 이이첨(李爾瞻)이 국정을 문란하게 하므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 때 정인홍 등이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하자 이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고, 그 뒤 벼슬을 단념하고 감곡(鑑谷)에 은거하여 후진 교육에 힘을 쏟았다.
1614년 옥사가 일어나 이이첨과 정인홍이 폐비를 주장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옳지 못함을 상소하고 7일 동안 합문(閤門) 앞에 엎드려서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15년(숙종 41) 도계서원(道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취사문집(炊沙文集)』 6권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