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득년(得年)·목년(穆年). 경기도 양평 출신. 양반으로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07년 7월초 양근에 거주하는 민기희(閔基熙)로부터 현재 정부의 대신을 믿을 수가 없으니 우리가 의병을 일으켜 일본인을 물리치고 구제도를 회복하자는 제의를 받고, 포수 30여명과 함께 경기도 지평군 우곡에 가서 김춘수의진(金春洙義陣)에 입진하여 종사가 되어 항일의병투쟁을 하였다.
같은 해 10월 24일 여주군 대송면 곡수에서 순사 한명을 사살하였고, 같은해 11월 보름경에는 홍천 남창에서 의병장 김춘수 및 동료의병 100여명과 함께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다. 같은해 12월초에는 여주 천양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8년 음력 정월 관동의병장 정대무(丁大武)가 의진을 해산하자, 정대무의 선봉장이었던 김응서(金應西)가 의병부대를 재조직하기 위하여 지평에 왔다. 이때 의병을 소모하는 전령문을 작성하는 등 함께 의병모집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이해 3월 일본군 지평수비대에 잡히고 말았으며, 서울로 이송되어 조사를 받고 1908년 5월 22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유형 10년을 언도받았다.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