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윤(子潤). 이혁손(李赫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증(李增)이다. 아버지는 부사과 이양필(李良弼)이며, 어머니는 이수유(李守柔)의 딸이다.
1525년(중종 20)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39년(중종 3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에 임명되었다. 1544년 예조정랑이 되었고, 그 뒤 병조정랑·정언·지평 등을 역임하면서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50년(명종 5) 경연(經筵)에 참가하여 명나라가 우리나라의 사신접대를 소홀히 함을 지적하고 북경(北京)과의 무역금지를 건의하였다. 이후 장령·수찬·부교리·사간·사인·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충효(忠孝), 공검(恭儉)하였지만 학문적 수준이 높지 않아 경연에서 문리(文理)가 통하지 않은 때가 많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