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4년(선조 17) 온성부사를 거쳐 회령부사를 역임하고, 1591년에는 비변사의 천거를 받아 함경남도병마절도사에 발탁되었다. 이듬해 함경북도병마절도사 한극함(韓克諴)과 함께 마천령(摩天嶺)의 해정창(海汀倉)에서 근왕병을 모집하기 위하여, 함경도에 체류하고 있던 임해군 이진(臨海君 李珒), 순화군 이보(順和君 李보)를 사로잡기 위하여 북상하는 가토[加藤淸正]의 왜군을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참패를 당하였다.
회령으로 퇴각하여 있던 중 왜군과 내통한 회령부 아전 국경인(鞠景仁)의 음모로 임해군 등과 함께 왜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 뒤 안변에 수금되었다가 1593년부터 철수하는 왜군을 따라 남으로 이동하던 중 부산에서 석방되었는데 패전과 적에게 붙은 죄명으로 복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