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 미상. 1909년 7월 15일에 이상필(李相弼)과 같이 사궁회(射弓會)를 조직하였다. 활쏘기는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맞지를 않고 안 맞으면 자신이 스스로 무디게 되므로, ‘군자지도(君子之道)’라 하여 심신수양에 크게 이용하였다.
또한, 근대스포츠보다 우리나라의 활쏘기가 고대무예나 체육으로 자랑할만한 것이라 하여 그 보급을 위해 사궁회를 만들었다. 당시 근대스포츠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우리나라 고유의 활쏘기를 자랑스러운 전통이라는 인식아래 유지, 존속시켰음에 큰 의의가 있으며, 사궁회의 조직으로 활쏘기운동의 맥을 이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