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신. 호는 편파월(片破月)이나 작품 활동은 주로 본명으로 하고 있다.
1936년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신문사와 잡지사에 근무하면서 시작 활동을 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 등단하여 그가 월북하였던 6 · 25 당시까지 4권의 시집을 남겼다. 월북 후의 시작 활동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 없다.
산문은 양적으로 극히 한정되어 수필과 평문 몇 편에 불과한 천성(天性)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느 유파나 동인에 가담하여 활동하지는 않았으며 초기에 몇 편의 습작품을 지상에 발표하다가 곧바로 『분수령(分水嶺)』(三文社, 1937)과 『낡은 집』(三文社, 1938) 등 2권의 시집을 연이어 출간하면서 시단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1930년대 후반에 서정주(徐廷柱) · 오장환(吳章煥) 등과 함께 3대시인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후 그가 월북하기까지 『오랑캐꽃』(雅文閣, 1947)과 『이용악집(李庸岳集)』(同志社, 1949) 등 2권의 시집을 더 간행하였다. 그는 유학시절에 여러 가지 품팔이 노동을 하면서 학비를 조달했는가 하면, 민족해방을 위한 혁명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몇 차례 일본 관헌에 잡혀가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이룩한 그의 시세계는 보다 절박한 시대적 상황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식민치하의 우리 민족, 특히 간도 유이민(流移民)들이 겪었던 비참한 생활실상을 밝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그 유이민들이 고국에 돌아와서도 소외되어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과 좌절감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그는 암담했던 한 시대사를 고발한 시인으로, 항시 없는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한 시인일 뿐만 아니라, 단형서사시(短形敍事詩)의 형식을 실험한 작가로 근대시사에 공적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