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성천(聖天), 호는 아주(鴉州). 참판 이교식(李敎植)의 아들이다. 1890년(고종 27) 과천현감(果川縣監)을 거쳐 후일 나주군수를 지냈으며 실학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다. 그는 잠업에 식견이 높아 1884년에 『잠상촬요(蠶桑撮要)』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이는 그의 친한 벗 김사철(金思轍)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김사철은 1878년 문과에 급제하여 응교를 비롯, 수많은 현직(顯職)을 거쳐 도승지·의정부찬정 등을 역임한 사람으로 잠상에 관한 농서를 엮고자 수많은 잠상 서적을 모았다.
그러나, 관직에 바빠 이를 모두 실학에 밝은 이우규에게 주면서 잠상서(蠶桑書)를 쓰도록 권하였다. 이래서 이루어진 것이 『잠상촬요』인 바, 100여 년 전에 편찬된 이 농서의 잠상기술은 최근의 잠상기술과 대차없을 정도로 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뽕나무의 품종판별이나 정지법(整枝法 : 나뭇가지를 가꾸는 법)의 도해설명, 각종 잠구(蠶具)의 그림 등은 종래 농서에서 볼 수 없는 사실적 풀이를 가하고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되어 있다. 그는 1880년대 개화기 때 중국의 잠상기술을 도입한 실학자로, 또 이를 실천에 옮긴 일선의 권업행정가로 우리나라 잠상기술개선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