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보(眞寶: 경상북도 청송). 자는 수옹(壽翁), 호는 개곡(開谷). 의성 출신. 이희성(李希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득춘(李得春)이고, 아버지는 종묘서직장 이의준(李義遵)이며, 어머니는 풍산김씨(豊山金氏)로 현감 김대현(金大賢)의 딸이다. 김응조(金應祖)의 문인이다.
1632년(인조 10) 추천으로 창릉참봉(昌陵參奉)이 되고, 1635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바로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다. 이어서 공조좌랑·예조좌랑·병조좌랑·성균관직강·예조정랑·춘추관기주관·병조정랑을 거쳐 1643년 함평현감으로 나갔다가, 1647년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형조정랑을 제수받았다.
그 뒤 풍기군수로 나가서는 어떤 호족의 모함으로 파면되었다가, 1652년(효종 3)에 다시 예조정랑으로 서용되었으나 이듬 해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상기(喪期)를 마치고 나서는 벼슬길을 단념하고 청성산(靑城山)에 들어가 낙고초당(洛皐草堂)을 짓고 학문을 닦았다.
1656년에 부름을 받고 나가 성균관전적을 거쳐, 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에 올랐으나 사양하였다. 1665년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제수되어 숙배(肅拜)를 나갔다가 서울 객관에서 죽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하여 예조정랑으로 있을 때에는 정랑의 신분으로서 인조가 내원(內苑)에 별전(別殿)을 지으려는 것을 끝까지 만류하였고, 함평·풍기의 외직에 있을 때에는 고을 백성들에게 칭송을 들었다. 저서로는 『개곡문집(開谷文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