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청진 출생. 청진상업학교 졸업 후 서울에 와서 여러 레코드사를 돌아다녔다. 1938년 오케레코드사에서 박시춘(朴是春) 작곡의 「눈물의 춘정」을 취입하여 여론이 좋았다. 빅타레코드사에서도 이미 취입해 놓은 전수린(全壽麟) 작곡의 「얄궂은 운명」을 임영일(林榮一)이라는 예명으로 출반하였다. 1940년 임근식 작곡의 「꿈꾸는 백마강」을 불러 크게 인기를 얻었다.
1943년 이후 중국 톈진(天津)·베이징(北京) 등지에서 교포 위문공연을 하였고 물자교환사업에도 참여하였는데, 일본군에 협조하였다는 혐의를 받아 톈진에서 1년 동안 옥중생활을 하고 1946년 귀국하였다. 가수생활 중에 기타 연주를 익혔고 독학으로 음악이론을 공부하였다.
1947년부터 무대공연물의 음악을 담당하여 작곡·편곡에 남다른 솜씨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1949년 김해송(金海松) 작곡의 「선죽교」, 이재호(李在鎬) 작곡의 「귀국선」을 취입하였고, 자작곡 「미사의 노래」를 불러 인기 절정에 이르렀다.
1955년경부터 극영화의 배경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하여 수십 편의 영화음악 기록도 남겼다. 강대진(姜大振) 감독의 「어부들」에서의 음악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가 담당하였던 영화주제곡들 중에서 송민도(宋旻道)가 부른 「카추샤의 노래」, 최무룡(崔戊龍)이 부른 「외나무다리」, 현인(玄仁)이 취입한 「꿈이여 다시 한 번」 등은 오래 기억되는 곡들이다.
그 뒤에도 이미자(李美子)가 부른 「살아있는 가로수」, 이동근의 「고향의 모정」, 남상규의 「산포도 처녀」, 조미미(曺美美)의 「바다가 육지라면」·「단골손님」 등의 인기곡을 작곡하여 1970년대 초반까지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