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건지(健之). 판서 이발(李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감찰 이유(李洧)이다. 아버지는 건공장군(建功將軍) 이주(李湊)이며, 어머니는 부사 권유순(權有順)의 딸이다.
1480년(성종 11) 생원이 되고, 1483년(성종 1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박사·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을 거쳐 사간원정언·형조좌랑·사헌부지평·예조정랑을 지냈으며, 1495년(연산군 1) 사헌부장령으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사헌부집의·군기시정·승문원판교를 역임하였다.
평소 무재(武才)가 있고 한어(漢語)에 능통하여 항상 선전관과 승문원의 벼슬을 겸하였다. 1500년 동부승지, 1502년 좌승지·도승지, 이듬해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고 대사헌에 이르렀다.
이때 연산군에게 “대간(臺諫)을 시켜서 기생들의 가사(歌詞)를 지어 올리도록 하는 일은 성덕(聖德)에 누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여 중지하도록 하였으므로, 집의 이계맹(李繼孟)이 “공(公)이 아니었다면 후세에 조롱을 면치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우상 이극균(李克均)이 “당대의 풍헌(風憲)을 지킨 사람은 오직 이모(李某)뿐이다.”라고 하였다.
이어 갑자사화에 연루, 선산에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대사헌에 복직되었다. 그 뒤 한성부좌윤·호조참판·황해도관찰사·형조참판·경기도관찰사·형조판서·좌우참찬·호조판서·한성부판윤을 거쳐, 공조판서·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공간(恭簡)이다.